No. 500 “다 받아 줘야 사랑일까?” 2026 09 20
작성자: Barnabas Choi등록일: 09/19/2026(수정됨)
No. 500 “다 받아 줘야 사랑일까?” 2026 09 20 “그 사람의 선택인데, 그냥 존중해 주면 안 돼요?”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생각과 취향, 살아온 배 경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려는 태도는 분명 귀합니다. 누구도 조롱당하거나 함부로 낙인찍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존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 모든 선택까지 다 옳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사랑을 "아무것도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친구가 해로운 관계를 계속 선택해도 “네가 행복하면 됐지”라고 말하고, 누군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계속 상처 입혀도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며 넘깁니다. 갈등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품는 것과 모든 행동을 승인하는 것을 구분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그것을 거룩의 훼손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2:17). 의사가 병실에 들어간다고 해서 ‘병을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를 치료하려고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죄인을 부끄럽게 밀어내지 않으셨지만, 죄를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있는 그 자리에서 만나셨지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듣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릅니다. 존중하는 것과 승인하는 것도 다릅니다. 용서하는 것과 책임을 없애는 것도 다릅니다. 무조건 맞장구치는 건 잠시 마음을 편하게 할 뿐, 상대의 삶과 미래까지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왜 늘 그 모양이냐"며 몰아세우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옳은 말이라도 사람 전체를 실패자로 규정하면, 그는 변화보다 수치심을 먼저 경험합니다. 복음적 사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를 소중히 여겨. 그래서 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어. 하지만 이 선택이 너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나 상처를 줄지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괜찮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잘못한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나는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진실을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만나지만, 그 모습 그대로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사랑가운데 진리를 말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