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05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혀를 다스리는 것” 2026 10 25
10/24/2026
No. 505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혀를 다스리는 것” 메시지를 보내고 곧바로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화가 난 채 쓴 문자를 전송하고서야 “조금만 참을 걸” 하고 아쉬워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솔직함’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감정대로 쏟아내는 것을 자유라 부르지 않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잠 16:32).” 혀를 다스리는 일은 입을 닫는 기술이 아니라, 말로 분노와 교만이 나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가져가는 일입니다. 말은 관계의 방향을 정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약 3:5).” 한마디가 오랜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잠 25:11)”같습니다. 그래서 침묵은 도피가 아니라, 말로 사람을 살릴지, 상처를 남길지를 분별하는 선택입니다. 그렇다고 침묵이 언제나 지혜는 아닙니다. 입만 닫고 속으로 상대를 비난한다면 억눌린 ‘분노’이고, 말해야 할 때 두려워 입을 닫는다면 ‘회피’입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전 3:7).” 예수님은 빌라도의 거짓 고발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마 27:12–14; 사 53:7). 그러나 그 침묵은 두려움이나 무기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아셨고, 진리를 드러내야 할 때는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요 18:37). 십자가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고(벧전 2:23), 입을 여셨을 때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눅 23:34).”라고 하셨습니다. 말로 자신을 방어하실 수 있었던 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약 3:8).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시 141:3).” 절제는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입니다(갈 5:22–23). 말하기 전에 물어보십시오. 사실인가? 느낌인가? 듣는 사람을 세우는가(엡 4:29)? 죽이는가? 사랑으로 말하는가(엡 4:15)? 감정으로 과장하는가? 하나라도 확신이 없다면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짧게 기도하십시오. 오늘 내가 꼭 하려는 말은 상대를 살리는 말입니까, 상한 자존심을 달래는 말입니까? 삼켜야 할 말만큼, 건네야 할 감사와 격려의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혀를 다스리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말을, 알맞은 때에, 사랑으로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